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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똑 인물정보/정치인

박용진 국회의원 당대표 나이 고향 프로필 지역구 논란 약력

by 똑똑정보 2022. 8.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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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진프로필사진

출생

나이 1971년 4월 17일 (51세)

고향

전라북도 장수군 장계면

거주지

서울특별시 강북구 삼각산동

SK북한산시티 아파트

본관

밀양 박씨

현직

제21대 국회의원

더불어민주당 강북구 을 지역위원장

더불어민주당 서울 특별 시당 교육연수 위원장

더불어민주당 적폐청산특별위원회 위원

더불어민주당 제5차 천당 대회 당대표 후보

지역구

서울강북구을

 

 

박용진연설사진

 

 

 

박용진 의원 소개

대한민국의 노동운동가 출신 정치인이다.

제20·21대 국회의원으로 지역구는 서울 강북구 을이며 소속 정당은 더불어민주당이다.

정치 생활의 시작은 민주노동당, 진보신당에 몸담았던 PD 계열 진보 성향의 정치인이었다. 그러다 이후 민주통합당에 합류한 후 2016년 20대 총선 때 비로소 원내에 발을 들여놓게 되었다. 즉, 더불어민주당 내에서도 진보파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현재 민주당 내부의 세대교체론인 97세대의 대표주자 중 한 명이며, 당내 주류 의견에 따르지 않는 경우가 많아 소신파로 분류된다.

 

박용진파이팅하고있는사진

박용진 약력

1984. 서울 화계 국민학교 졸업

1987. 신일중학교 졸업

1990. 신일고등학교 졸업

1997. 성균관대학교 사회학과 학사

1998. 국민승리 21 대변인실 언론부장

1998. 청년실업 해결을 위한 운동본부 상황실장

2000. 민주노동당 서울 강북구 을 지구당 위원장

2001. 민주노동당 전국 집행위원

2004.7. 민주노동당 대변인

2005.11. 민주노동당 대변인

2010.10. 진보신당 부대표

2011. 혁신과 통합 강북구 추진 위원회 위원장

2011. 시민통합당 지도위원

2012.3. 민주통합당 대변인

2013. 성균관대학교 국정관리대학원 행정학과 석사

2013.5. 민주당 대변인

2014.1. 민주당 홍보위원장

2014.3. 새정치민주연합 홍보위원장

2015.8. 새정치민주연합 정책위원회 부의장

2015.12.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원회 부의장

2016.4.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 비서실장

2016.5. 제20대 국회의원 (서울 강북구 을 / 더불어민주당)

2016.6. 제20대 국회 전반기 정무위원회 위원

2017.4. 제19대 대통령 선거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 중앙선거대책위원회 공동 대변인

2017.5. 더불어민주당 원내부대표

2017.5. 제20대 국회 전반기 국회운영위원회 위원

2017.8. 제20대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 위원

2017.9. 더불어민주당 적폐청산위원회 위원

2017.11. 더불어민주당 이건희 등 차명계좌 과세 및 금융실명제 제도 개선 TF 간사

2018.7. 제20대 국회 후반기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위원

2018.7. 제20대 국회 후반기 교육위원회 위원

2018.10. 제20대 국회 4차 산업혁명 특별위원회 간사

2020.5. 제21대 국회의원 (서울 강북구 을 / 더불어민주당)

2020.7. 제21대 국회 전반기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위원

2020.7. 제21대 국회 전반기 정무위원회 위원

2021.11. 대한민국 대전환 선거대책위원회 공동선 거대 책위 원장

 

 

박용진마이크잡은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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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진 학창 시절

1971년 4월 17일, 전라북도 장수군에서 태어났다. 이후 전주진북초등학교를 다니다 1979년 부친이 서울로 전근하면서 서울 화계초등학교로 전학하여 그곳에서 졸업했다.

이후 신일중학교, 신일고등학교를 졸업했다. 그가 고등학교 3학년 때였던 1989년에 전국교직원 노동조합이 결성되었고, 그의 고2 시절 담임선생님이었던 이수호 선생이 결성 주도 인물로 구속되었다. 이에 자극을 받아 학교 동기생들과 교내 시위를 주도한다. 고등학교 내내 1987년 6월 항쟁 이후 분출된 정치, 사회의 민주화 흐름에 민감한 시절을 보냈다.

 

1990년 성균관대학교 사회학과에 입학했고 학생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2학년 때이던 1991년 명지대학교 학생 강경대의 죽음을 계기로 시작된 5월 정국의 말미에 그의 대학 선배인 김귀정이 시위 도중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박용진은 시신이 안치된 백병원으로 찾아간 뒤 장례가 마무리될 때까지 그곳에 있었는데, 이때의 경험으로 큰 충격을 받았다.

 

1994년 성균관대학교 총학생회장으로 당선, 서총련 산하 북부총련 의장직에 선출된다. 그해 6월 벌어진 전국 철도기관사 협의회와 서울 지하철 노동조합, 부산지하철 노동조합의 연대 파업을 지원하던 도중 구속되어 첫 번째 감옥 생활을 경험하였다. 100여 일의 수감생활 이후 집행유예로 풀려난 뒤 총학생회장 임기를 마치고 그해 12월에 현역으로 입대하여 1997년 2월 부산 53사단 해안 레이더 기지에서 복무를 마치고 만기 제대하였다. 제대 후 1997년 마지막 학기를 마치기 위해 복학한 뒤 김귀정 추모사업회 사무국장으로 활동했다.

 

 

진보당 시절

대학 졸업 후 민주주의 민족통일 전국연합의 정치부장으로 일하다가, 1997년 9월 결성된 국민승리 21에 언론부장으로 파견되었다. 대선을 마친 뒤 전국연합을 그만두고 권영길을 따라 진보정당 운동을 계속했다.

 

2001년 3월 ‘대우자동차 정리해고 반대 전국민중대회’에 참여했다가 구속되었고, 2년 1개월 후 노무현 대통령의 취임 1주년 사면으로 출소했다. 피선거권을 회복하지 못해 2004년 총선에 출마하지 못했다. 원내 3당이 된 민주노동당은 그를 대변인으로 임명했다. 총선이 끝나고 한 달 뒤 복권되었다. 그때부터 2007년 12월 대선 선대위 대변인까지 중앙당에서 활동했다.

2008년 민주노동당 분당에 반대했지만 진보신당이 창당되자 합류, 진보신당 후보로 다시 서울 강북 을에 출마했으나 11.8%의 득표율로 통합민주당 최규식 후보에 밀려 낙선했다. 2010년 진보신당 부대표가 되었다.

 

3기 진보신당 지도부 중 유일하게 야권 대통합에 동의했다. 2011년에 '진보 대통합' 논의가 활발해지면서 "2011년 9월 25일에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의 통합진보정당을 출범한다"고까지 합의가 되었으나, 뒤이어 열린 진보신당 당대회가 합의안을 부결함으로써 결국 '진보대통합' 논의는 무산되었다. 이에 지속적으로 '야권 대통합'을 주장하던 그는 진보신당을 탈당하였고 통합진보당 동참 역시 거부했다.

 

박용진의원회의사진

 

 

 

민주당 합류 이후

진보신당 탈당 뒤 문성근 등이 주도하는 ‘국민의 명령’ 운동에 합류하여 2011년 9월 '혁신과 통합' 상임 운영위원을 맡았다. 혁신과 통합이 결성한 시민통합당 지도위원으로 창당에 함께했다.

시민통합당이 민주당과 통합해 만든 민주통합당에서 최고위원 선거에 도전해 컷오프를 통과했으나 당선에는 실패했다. 그 후 민주당 대변인, 홍보위원장, 새정치민주연합 정책위원회 부의장 등의 당직을 지냈다.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 후보로 서울 강북구 을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어서 국회 입성에 성공했다. 이후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의 비서실장에 임명되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으로 대선 경선 국면으로 흐르자, 안희정 당시 충남도지사를 공개 지지하였다. 이후 제19대 대통령 선거 국면에서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 선거대책위원회의 대변인으로 활동했다. 문재인 대통령 당선 이후 20대 국회 2기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단에 합류, 전략기획부 대표직을 맡고 있다. 20대 국회 전반기 정무위원회와 운영위원회에 소속되어 있고,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와 더불어민주당 적폐청산위원회 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2020년 7월 6일,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비판하면서 "임대사업자가 시장에 미치는 순기능을 인정해야 한다"며 "재개발·재건축을 억누르지 말고 공급정책에 대해 적극적으로 고민할 필요가 있다"는 보도자료를 내 화제가 되었다. 그러면서 "청년이나 신혼부부를 위한 작은 아파트라도 적극 공급하고 신도시 정책도 필요하다"고도했다. 이는 6.17 부동산 대책이 나온 이후, 6월 23일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와의 대담에서 나온 발언이다. 그동안 재벌 문제에 대해서는 진보적인 시각을 강하게 드러냈지만, 부동산 문제에서는 보수진영과도 어느 정도 같은 인식을 공유하고 있는 것이다.

 

이후 더불어민주당 제20대 대통령 후보 경선에 참여하였는데 주로 이재명 경기도지사의 대장동 개발 사업 논란을 비롯한 도덕성 문제를 공격하는 데 앞장섰다. 그 덕분에 예비 경선에서 지명도가 가장 떨어지는 후보임에도 양승조, 최문순 두 도지사를 누르고 본 경선까지 진출했지만 이후 당내 이재명 대세론 때문에 역풍을 맞기도 했다. 하지만 최종 1.55%, 4위로 경선을 마감했다. 경선 이후에는 다른 후보들과 함께 대한민국 대전환 선거대책위원회 공동선대위원장 자리를 맡았다.

 

제20대 대선에서 더불어민주당이 패해 야당이 된 후 처음 열리는 전당대회에 당대표 후보로 출마를 선언했다. 이 자리에서 "더 이상 진영논리를 위해 악성 팬덤과 정치 훌리건, 좌표 부대에 눈을 감는 민주당이 돼선 안 된다"며, "계파와 팬덤의 수렁을 넘어, 민주당이 하고 싶은 정치를 찾자. 민심이 우선하고 상식이 지배하는 민주당, 다른 의견을 포용하고 상대를 존중하는 민주당, 다시 자랑스러운 민주당을 만들어야 한다"라고 선언했다. 동시에 당대표 선거 출마가 유력한 이재명 의원을 상대로도 "어느덧 지금 민주당에는 패배를 향한 공포와 특정인을 향한 절망적 기대감만이 자리하고 있다"는 말로 저격하기도 했다.

 

당대표 선거 출마 선언 이후 KSOI가 TBS 의뢰로 전국 성인 남녀 1,002명에게 진행한 민주당 대표 적합도 여론조사에서 35.7%를 기록한 이재명 의원의 뒤를 이어 16.8%로 2위를 기록했다. 이후 발표되는 여론조사들에서도 압도적인 1위를 지키고 있는 이재명 의원을 제외하고는 유일하게 두 자릿수 지지율을 유지하면서 2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7월 28일 진행된 컷오프를 통과하고 이재명 의원, 강훈식 의원과 본경선을 치르게 됐다. 이재명 후보의 지지세가 워낙 막강한 만큼 강훈식 후보와 단일화를 추진하고 있는데, 강훈식 후보 측에서 단일화에 다소 거리를 두는 모양새라 쉽지는 않은 상황.

 

 

 

박용진 미용실 사진

 

박용진 논란

1. 광주학생 비하 논란

2004년 11월 24일 당시 민주노동당 대변인이던 시절, 개인 자격으로 인터넷 매체 진보누리에 게재한 칼럼과 이를 박용진의 여의도통신이라는 이메일로 기자들에게 보낸 것이 논란이 됐다. 당시 광주에서 일어난 수능부정 사건을 '광주학생의거'와 '남총련'에 빗대어 조롱하고 지역감정을 조장했기 때문. 논란이 확대되자 박용진은 하루 만에 글을 내리고 당원 게시판에 사과문을 올린 뒤 대변인직을 사퇴했다.

 

 

2. 선거법 위반 논란

20대 총선 당시 회계책임자가 홍보 문자메시지 발송과 관련하여 선거법 위반 혐의로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검찰은 박용진이 범행에 관여하지 않았다고 판단해서 회계책임자만 기소했다.

 

 

3. 전과 4범 논란

벌금 100만 원짜리 음주운전 전과 기록과 국가보안법과 집시법 위반 등 모두 4건의 전과가 있다.

 

 

4. SNS에서의 어그로 논란

탁현민 청와대 행정관 임명 관련 논란에 참전, 탁현민의 성관념에 대해 비판하는 발언을 하다가 문재인 지지자들에게 문자 폭탄과 페이스북 댓글 등으로 폭격을 당했다. 이런 비난 댓글 중 외침을 "왜침"이라고 오타 낸 부분에 대해 박용진이 "왜침은 왜놈들이 쳐들어오는 거"라고 받아쳤는데, 정작 본인도 SNS에 백바지라는 단어를 백 자지라고 오타를 낸 과거가 밝혀지면서 뭇매를 맞은 적이 있다. 또한 2004년 호남 비하 논란을 빚은 칼럼을 실었다가 민노당 내에서 정파 가릴 거 없이 비난을 받았던 흑역사도 발굴되었다. 탁현민 관련 문제가 터질 때마다 페이스북이나 방송 등을 통해 부정적인 의견을 꾸준히 피력하고 있으며 백, 표절, 투기, 세금 탈루, 위장전입 등 5대 기준에 걸려야 청와대의 인선 기준에 적합한데 본인은 걸리는 게 없어 연락이 안 올 거라며 청와대를 빈정대며 비꼬는 발언을 했다. 그리고 자신을 비판하는 댓글을 보면 먼저 차단으로 응수한 다음 받아치는 지질한 태도도 보이고 있다.

 

5. 추경예산안 불참

2017년 7월 22일 추경 예산안 표결을 위한 국회 본회의가 열렸으나 더불어민주당 의원 26명이 불참해 의결 정족수 부족으로 본회의 통과가 지연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해외 출장과 개인 일정 등이 불참의 이유였는데, 박용진도 그중 한 명이었다. 박용진은 같은 민주당 국회의원 전해철 등과 오래전부터 예정돼 있던 중남미 출장 일정에 참가한 것으로 드러났다.

 

6. 20대 대선 기간 중 조국이 윤석열 천거 발언 논란

2021년 6월, 윤석열 검찰 총장을 조국 전 민정수석이 추천하였다고 발언하여 논란이 되었으며, 이에 조국 전 민정수석은 자기 책을 보라며 천거한 적 없다고 응대하였다. 이에, 박용진 의원은 "민정수석으로서 역할을 안 했다는 건가요?"라고 반문하며 논란이 되었다

 

7. 우크라이나 젤렌스키 대통령 비하

2022년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개전 이후 2월 25일, 광주방송 대담에서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반짝 인기를 얻어 대통령이 되었다가 정치를 다 망쳤다는 투로 얘기하며, 야당 후보인 윤석열과도 빗대며 모욕을 저질렀다. 나름 합리적인 진보라 평가받았던 본인이 오히려 이러한 논란을 일으키며 많은 비판을 받고 있다

 

8. 강북구청장 밀실공천 논란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에서는 지난 4월 22일 오전 강북구청장 후보로 박용진 의원의 보좌관이던 최선 예비후보자를 전략공천한다고 발표했다. 이에 23일 오전 10시 김기옥 이백균 이순희 이승훈 안광석 예비후보는 박용진 국회의원(강북을) 사무실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최선 예비후보의 전략공천 철회를 주장했다.

이들 5인의 예비후보는 경쟁력, 후보자 적합도를 강북구민에게 묻지 않고, 독단적으로 밀실 공천하는 것은 강북구민을 무시하는 처사라며, 더불어민주당 서울시당은 공직후보자 적합도 조사 결과를 공개하고, 최선을 전략 공천한 이유를 밝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4월 26일 오후 7시에 촛불집회도 신고가 돼 있었지만 공심위에서 4월 26일 재심을 받아들여 최선 후보와 이순희 후보의 양자 대결로 5월 4일과 5일에 경선을 치르기로 결정이 내려져 촛불집회는 취소됐으며 재심 결과에 대해 향후 대책을 논의하기로 하였다.

박용진의원인터뷰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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